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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한수의 성향에 대한 3류소설 ....

신의한수 작성일2018-06-13 12:33 조회2,809회 댓글32건

본문

안녕들 하십니까^^
신의 한수입니다.  뭐 말씀을 안드려도
아시는 거지만요ㅎㅎ
다른 것이 아니라
재미님이 성향이란 것에 말을 하셨기에.
이 번 댓글에 두사람과는 무관하게 내가 살아오면서 격은 성향이란 것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말씀 드려볼까 해서 또 다시 장문에 글을 올리는 노가다를 하고 있습니다.

성향이란 놈은 누구에게나 다있죠.
그러나 성향이란 놈이 강하다고 해서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닙다.

그 성향이라는 놈 때문에 꼬인 저의 인생에
대해서 소설을 한번 써보겠습니다.

구독료는  무료로 하고 싶으나 나의 손가락이
혹사를 너무 당하여 위로 차원에서 더도덜도
말고 딱 ☞ 500백원만 받겠습니다.

입금 하실분들은 재미님께 저의 계좌가
있으니 알아보시면 되시고.  현금으로
주실 분들은 후에 정모를 할때가 있게 될시에
현장에서 직접 받겠으나 그때는 이자가 붙는다는
것을 각인 하시고 계시기 바라겠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저는 누구나 돈만 주면 들어 갈수 있는 부천 소재에 있는
아주 꼴통 학교를 졸업한 고졸입니다.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아와서 아는것이
많지가 않은 단순 무지한 사람입니다.
무식이 자랑은 아니란 말도 있죠.  그러나 사실이 그러한걸
어떻하겠습니까...

제가 체구나 작으나 성향이 강하다보니 남에게
지는걸 무척 싫어 했습니다.

어릴때는 무서운게 없었으니까요. 코흘릴때 부터
깡 하나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친구들은 그당시 하나같이
각 지역에서 알아주는 친구들과 사귀게 되었고 어린 시절을 그들과 함께 보내습니다.

그렇게  지내오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되어지만 철이 들지 않아서인지.그놈에 잘나지도 않은 성향 때문에 작은 일 가지고도 일을 크게 만드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제가 23살무렵에 오른팔을 심하게 다쳐서 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습니다.
팔의 감각이 전혀 없을 정도에 부상으로 큰 수술이였죠 피도 엄청 흘려서 공급 받아서수술을 받았으니까요(병원에 안가고 버티다가요)
오른팔에 있는 모든 신경과 근육. 인대가 모두 끈어진 상태에 의한 수술이였죠-.-::
그로인해 몆년간 오른팔을 제대로 사용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당시 감각이 거의 없어 으니까요

몇년이 지나 재수술을 하고 나서 10여년이란 세월이 흐르다보니 조금씩 감각이 돌아와서 지금은 80%정도 회복이 되어서 사용하는데 큰 무리는 없지만요

그래서 20십때  직장 생활을 해본적이 많지가 않았습니다.
직장생활은 적성에 맞지도 않고 해서 24살 때
사촌형님과 당구장을 동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당구장을 시작한 곳은 서울 대림동이란 지역이었고
그곳을 처분하고 2번째로 영업한 곳은 제 고향이자 동네인 영등포에 위치한 신길동이란 곳이였습니다.
지분은 형님이 되셔지만운영은 제가 맞아서 했었죠
그러나 그 곳에서도 그 못된 성향을 못 고치고 단골 손님과
싸우게 되었습니다.
저로 인해서 벌어진 싸움은 아니였습니다
요즘은 없겠지만 그당시 다방 레지가 배달을 할 때였는데.
단골 손님이란 작자가 배달을 온(20.21살) 정도 되는
어린 아가씨에게 짓궂게 하기에 그러지 못하게 제지를 했다고
시비가 되어 벌어진 일이였습니다.

당구장도 몇개월 운영하다가 그만두고 쉬고 있으면서
간간히 소일거리를 보며 지냈습니다.

제 성격상 직장 생활은 맞지가 않았기에  취직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천역 앞에 로얄 백화점에 아는분 소개로 신사복 판매 사원으로 취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래 다니진 못하고 8개월  정도인가 다니다가 일을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손님과 매장 내에서 난투극을 버렸거든요.
그일도 제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은 아니였습다.
이유없이 손님이 먼저 손지검을 해서 벌어진 일 이였죠.
호객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요ㅎ...

물론 이사님 사무실에 불려 갖죠 그나마 다행인것은
그 손님도 사나이라고(온몸에 문신)ㅎㅎ

본인이 개인적인 일로 그날 좋지 않은 일이 있어 기분 전환으로
아이쇼핑을 (☜요기도 문제에 눈팅ㅋ~)하려고 왔다가 호객행위를 한 저에게 화풀이를 한 것이고 먼저 손지검을 했다고 나에 잘못은 전혀 없어니 불이익 당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고 이사님께 말을
좋게 해줘서 징계도 받지 않았지만

이사님 방에 함께 자리하셨던 평소에 저를 좋게 봐주신 백화점
신사복 매장 담당 과장님께서 손님과 나가서 회포나 풀고 오라고 돈까지 쥐어 주어서 근무시간 임에도 그 손님과 찐하게 한잔 마시고 기분 좋게 풀고 그것 인연이 되어 간혹 그 형님과을 만나서
술 한잔씩 한 그런 일도 있었네요

이때 제 나이가 아마 26살 때였겁니다.
그일로 짤리지는 않았지만 사람 상대하는 일이라
이것도 저하고는 맞지가 않아서 그만 두었죠

그 후 백화점을 그만 두고서 형님들과 동생 몇명과 함께 강릉 경포대에 있는 민박집을 세 얻어서 철마다 민박집 운영을 했었습니다.
만리포에서도 야영장을 하기도 했었고여.
그러다 경포대 개장을 몆일 앞두고 사고를 당해서 왼쪽 고관절
수술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사고로 여름장사도 못하고 보상도 전혀 받지 못하였습니다.
동생놈 오토바이를 뒤에 타고 가다가 편도1찬선
도로에서 불법 유턴하는 차량을 피하지 못하고
사고가 나게 된 것이였는데

차량 운전자는 본인 차량도 아닌 친형에 차 였으며.
종합보험도 들어 있지 않은 차량이라 보상을 받을수가
없어던 겁니다.

민사로 하려고 했지만 차량 운전자가 은평구 지역 어느꽃동네에 사는 형편이 아주 어려운 사람이라서 민사를 걸어봐야 나올것도 없어고 시간만 걸리기에 모든걸 포기하고 합의를 해주었지만.

저는 그 일로인해  여름 장사를 하지 못해 금전적인 손해를 보았지만. 그것 보다 더 큰 문제는 그 사고로인해 왼쪽 다리를 걷는것
말고는 전혀 뛸수도 없게 되었고.  물건을 듵 수도 없어 습니다.

아프기도 했지만. 다리에 힘을 줄수가 없어거든요.
그렇게 세월을 보네다. 다리도 재수술을 받고서  또 10년 이란
세월이 지나 다리도 어느 정도 완치가 되었네요
지금것 여러가지 일을 해봤었습니다

처음 사회 생활을 시작한 것은 20살때 선배 권유로 부산 남포동에  위치한 빠칭코 업소해서 시작을 하여 경주 도쿄호텔 내에 있는 슬롯모션 도박장에서 일을 보다가 선배의 연락을 받고 서울로 상경하여  선배가 운영하는 영등포에 있는 성인 오락실에서 일을 봐주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아서 그만두고 서울 반포동에서 야식집 했었습니다. 예전에 다친  팔과.다리에 휴유증으로 일을 못하고 쉴 때도  많았지만. 불편한 팔과 다리로 많은 일들을 했었네요

작은 누님에 아들.딸 두 조카와 매형에 고대 후배분의 두 아들을  포함한 네명의 조카들이 스리랑카란 나라에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 한인의 가정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게되였는데 그집이 생활이 넉넉한 가정이 아니였기에 매형 후배분이 홈스테이 가디언과
약간에 친분이 있는 사이라서 홈스테이 비용을 줄 이는 명목으로 그 가디언 부인에게 레스토랑을 하라고 투자를 하였는데 중간에 차질이 생겨 (알고보니 홈스테이 가디언 놈이 그곳  스리랑카에서 블랙 리스트에 오를 정도로 소문난 시기꾼이였네요)

그래서 매형과 누님에 부탁으로 조카들의 안전과 투자를 했던
레스토랑 관한 문제를 해결을 하고자 제가 스리랑카를 가야만
되는 상황이라서 하고 있던 일도 접고 매형과후배분과  함께
스라랑카로 갔습니다.

두 부모는 몇일 함께 지낸후 한국으로 돌아가시고 저만
그곳에 남아조카들과 함께  홈스테이 하우스에서 몇개월을
지네면서 일부 원금을 해수하고 일부는 홈스테이 비용으로
탕감을 하는 식으로 하였는데...

어찌나 악독하고 안하무인 식으로 나오는지 대화도 통하지도
않고 적반하장으로 한국에 있는 아이들 양쪽 부모님들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저에 대해서 무슨 동네 양이치와 비유하듯
하면서 해결사로 저를 보낸 것이냐 식의 이멜을 보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아이들 삼촌인 저를 자기 집에서 빠른 시일안에 다른 거처를 구해 내보네 주길 바란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자기들은
아이들에 식사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식의 협박성 이멜을 보내왔다는 연락을  조카들 두 부모들에게서 연락이 왔더군요

그 일로  대화를 하다가 도통 말이 통화지도 않는 사람이다보니
불가피 하게 싸우게 되었습니다.

그 자는 영어와 현지어"인 싱할리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서
법적으로 가게 되면 제가 불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후 에 그 곳에서 나와 집을 구하고 영어 한마디도 못하는 제가 조카들의 가디언이 되서 그곳에서 3년을 생활을 하게 되었네요.

이국만리에서 누구 한명  아는이도 없고 영어도 못하는 제가
외로이 창살없는 감옥아니 감옥 신세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현지에서 작으만한 호텔에 레스토랑과 가라오케를 운영하고 계시는 조카와 친한 친구에 아버님을 알게 되어 습니다.

저보다 7살인가 연배 되시기에  형님으로 모시고 되었고
아이들이 등교 하고나면 아는이 한명없이 혼자 외로이 있는
저의 사정을 아시는 형님께서 불러 주셔서 낮에는 형님이 다니시는 골프장에 함께 동해을 해주셔서 골프도 가르쳐 주시고
늦은 저녁시간에는간혹 한번씩 불러주셔서 가라오케에서
술도 마시고 때론 카지노도 형님이 가실때  저를 대려가 주셔서
그 형님으로 인해 외로움을 떨칠수가 있었네요.

그 이전에 홈스터이 하우스에서 급하게 나올수 밖에 없었을 당시당장 집을 구할수가 없는 상황이라서 아이들의 두 어어니들이 오셔서 임시 거처로 아이들 학교와 가까운 곳에 있는 아담한 호텔에 7명에이나 되는 많은 인원이 함께 지낼수 있는 방이 없어서 펜트하우스를 구할수 밖에 없어기에 한동안 일주일간을 그곳에서 지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형님께서 사정을 아시고는 집을 구하기 전까지 당신  집에서 생활을  할 수 있게 도움을 주셔서 호텔에서 나와 형님 집으로 임시 거처를 옴겨 그 곳에서 지내면서 집을 구하러 다녀습니다

이국만리 타국에서 생명부지인 사람들을 단지 당신 자식에
친구들 가족이라고 아무런 댓가 없이 선뜻 자신에 집을
내어 주시다는게 말이야 쉽지 아무나 그러한 배려를 할수 없는
일은 아닌데..형님께서 선뜻 도움에 손길을 주셨습니다
말로는 표현 할 수 없는 은혜로너무나도 큰 도움을 받았서
마음 편히 집을 구할수가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형님께 받은 은혜를 갚고자 형님을 깍듲이 모시고
제가 도움 될 수 있는 거라면 무엇이든 찾아서 했지만
형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비하면 비교 조차 할수 없는
소소한 것이였죠.

형님도 그 곳에세 딸 한명과 혼자 생활을 하시고 계셨고
매일같이 술을 드실 밖에 없는 사업을 하시는 분이라서
1주일에 3~4번은 제가 직접 해장국을 만들어서
형님 드시라고 가져다 드리며 "형님께 받은 은혀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이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은혜에 보답을
했었습니다.
물론 형님택에서 일하는 현지인 가정부가 있어지만요

그렇게 형님과 돈득한 우애를 다지며  지내오던중 형님의 가라오케에  문제가 생겼다는 연락을 받고 곳 바로 차를 몰고 가라오케를찾아같는데 가라오케의 라이센서에 문제가 생겨 형님이 경찰서에
가셔야만 되는 상황이였던것 같아습니다..

형님께서 가셔야 되는 상황이였지만. 가실수 없는 이유도
있으셨는지 제게 부탁을 하시고자 연락을 하셨더군요.

하루 이틀만 유치장에 있다가 재판을 받고 벌금  내고
나오면 된다고 하시며 말씀을 하시더군요.

형님에 부탁에 말씀을 듣고서 잠시 망설였습니다.
왜냐면 어린 조카들 4명이 있어기 때문에요.
그 큰집에 가정부는 있기는 했지만 있어지만 가정부가 기거하는
숙소는 집"안쪽에 있는것이 이니였고 외각에 있고. 무엇보다도
그 큰집에  어른 이라고는 저 한명뿐이 없는데 이틀식이나 집을 비우고 아이들만 있게 되는 상황  때문에 망설여질수 밖어 없더군요또한 아이들 하교하고 나면  저녁을 먹고나서 4명에 아이들  모두투션을 하러 가야 되는데 시간과 장소가 다들 다르고 거리도 멀기 때문에 시간을 맞춰 대려다주고 대려오고 해야만 하기 때문에
망설일 수 밖에 없었네요.

그런 상황을 아니고는 형님의기사를 보내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셔서  결국에 흔괘히 형님 대신에서 제가경찰서에 가게  되었습니다.
결잘서 유치장에서 하루 밤을 지세우고 다음날 법원으로 송치되서 재판을 받기 위해 법원 유치장에서 대기 하고 있던 중 그안에 있던 현지인 들 중에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표정과 지들끼리 희죽리며수군덕 거리는 것이 저를 향해 하는 것임을 알기에 그 안에서도
디툼이 있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경찰서 유치장이 너무 지저분하고 헌지인 몆명과 함께 유치장안에 도저히 같이 있지 못하겠다고 형님께 부탁을 드려담당 경찰과에게 돈 얼마와 담배 한갑을  뇌물로 주고 저는 경찰서 밖에 벤치에서 마음 편히 담배도 피우며 하루를 벗텨내요

그당시 은행원 한달 월급이 5만루피로 한국 돈으로 50만원이였거든요 그 담당 경찰관  한테 5천 루피 정도 주시것 같더군요 ..
스리랑카는 돈이면 왠만한 것은 쉽게 쇼부가 가능한 나라였거든요
또 한번은 현지 툭툭기 기사와 시비가 붙어서 경찰서 신세를 졌었고요 ..타국에서 2번 힉이나 그런 일을 격어었네요
한번은 은혜를 갚고자 였지만.
다른 한번은 성향 때문 이였네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비자가 문제가 되어서 이이들이
졸업할때까지 있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처음 스리랑카에 갈때에는 여행비자로 가서 그곳에서
뇌물과 작업을 통하여 취업 비자를 발급 받아서 있었는데
법이 강화가 되서 나중에는 어찌할 방도가 없어서 입국을
할 수 밖에 없어던 겁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여차여차 지내오다 힘쓰는 일은 할수 없는 몸 상태고 배움이 짧고 나이들어  배운 기술도 없는 제가 직장 생활을 할수도 없는 입장이였습니다

친구에게 빌려준 돈도 못받고. 보증선것도 문제가 되어 고스란이 떠않게되서 이래저래 어려운 상황이였습니다.
맞당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어고요

그러던 중 시흥 친구에 권유로 서울 신림동에 위치한
난곡동이란 곳에서 보도 일을 시작 하게 되었습니다.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냐는 말도 있지만
처음에는 참 얼굴  팔려서 할 짓이 못된다는
생각에 많이 망설이고 생각도 많이 했지만

먹고는 살아야 하기 때문에 보도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단계에서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사무실이며.아가씨며.또한 일하는 방법이나 루트도 전혀 모르는 신생인 제가 그래서 친구가 알고 지냈던 선배가 보도일을 하고 있다고 소개를 하여 그 사무실에서 있으면서 아가씨를 모집하여.
구한 내식구들과 함께 그 사무실에서 무보수로 일을 도와주고.배우면서 1년을 그곳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그 후 독립을 해서 따로 사무실을 얻고 본격적으로 일을 3년간
했었고요
식구도 많았었고 그곳에서는 나름 괜찮은 사무실이였습니다
콜도 나름 많았고.식구들 스타일도 5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
였으니까요

그러나 나의 성향이 어디가겠습니까....
너무 성향이 강하다보니 다른 실장이나 업소사장님들은
뿐만 아니라 내 식구들 조차도 도리도 모르고 경우없는
행동하는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냥 넘어가지
안았었으니까요

아무리 내가 하는 일이 합법적인 일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먹고살자고 다들 추한 꼴 격으며 힘들게 일을 하는 것인데
기본적인 것은 지키며 하자는게 저의 원칙이였기 때문에
작은 실수라도 대충 넛ㅇ어가는 법이 없었습니다

난곡에서 00 사무실 실장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였으니까요. 오죽하면은업소 사장님들 뿐많이
아니라 다른 사무실의 식구들 까지 도 알정도 였으니
말해 모하겠습니까.

제가 하는 일이 합법적인 일은 아니였으나
그안에 협회라는 것이 있고 회칙과 룰이라는것이있습니다.

아무리 하급한 일을 하고들 있다지만 회의를 거처 안건이
통과 되면 설령 나의 생각과 맞지 않는 의견이였다"해도
이유를 불문하고 결과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지금것
살아온 저의 확고한 주관이자 신념"인'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실장들은 자기만에 이익만 취 하고자 회의를 통해 찬성을 한 실장들도 뒤에서는 회칙을 지키지 않고
반칙을 쓰는 실장들이 태반  이였습니다.

저는 절때 그런걸 용납을 못하는  성격이다보니 업소나 내 식구들을 한테까지도 그런 성향을 비춰서 왔었고...경기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저런 이유까지 겹치게 되서 그 일 마저도 접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성남 집에 들어와 있으면서 거동이 불편하신 어머님을 챙겨 드리며 지내고 있으면서 현재 처한 상황에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하다보니 희망이라는 마음으로 로또란 것을 다시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우연히 이곳을 알게되여 메뉴얼에 있는 색상별당번과
지난회차에 당번을 보기위해 비회원으로 있으면서 댓글들을
하나하나 보게 되었고 그로인해 이곳 앱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으며.  모두는 아니지만 주로 활동하는 몇몇 회원들에  성향을 댓글로 보며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일이지만 가관도 아니였습니다.
아~~오해는 마시고요 주로 활동하시는 분 모두를  칭한것이 아니니까요
지금이 자리에 없는 사람 중 한두사람을 말하는거니까요
 제말이 거짓으로 들리시면 자유게시판에 검색을 해보시면
아실겁니다

가입하면서 그런분에게  가입인사글에 빚대서들으라고 했
말도 있으니까요

그말을 하고자 가입을 하였던 것이고 이곳에서 활동"할 "계획은
없어기에 바로 탈퇴를 할려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다보니 운영자님께서 회원님들을 생각하시는 마음이 남다르게 각별하시고 애정  넘치는 모습이 좋게 느껴저서 좋았고 회원님들과 소통을 하면서 나의 부족한 언어구사 표현으로 사소한 오해도 있었지만

그러면서 정"이란게 들게 되어 발을 빼지 못하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놈에 잘나지도 않은 성향이 이 곳에서도 발산이
되어 회원님들께 적지않은 불편을 드리기도 한거 같습니다.

허나 제 자신이 잘나서도 아니고. 엄현이 이곳 앱에 책임자이신
운영자님이 계시는데 내 개인에 앱"인냥 개인적인 생각으로 운영 방침을 제 멋되로 하고자 했던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단지 가입을  했으면 회원으로써 무엇이됐던 하려거든 제대로 하셨으면 했는데.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소수 몆분들 말고는 전혀
그런 모습들을 볼수가 없어기에 도데체 이분들이 이곳에 무엇 때문에 가입을 하신건지 도무지 이해"되지가 않아 개인적인 것이지만 회원에 한 사람으로써  잘해보자는 취지로 수차례에 걸쳐 부탁에  말씀을 드려지만은 몇"몇분들 빼시고는 아직까지도 대부분 동참을 하지 않고들 계십니다.

운영자님에 취지는 이 앱이 누구나 마음 편하게
자유로이 활동 하는 곳이 되길 바라시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자유로이 드나드는 것이 좋지만 이왕 앱에 방문을
하셨고 본인들이 필요한 정보를 얻으셨으면
기본적인 도리는 하시라는 겁니다.

어느 똘아이들은 뇌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행동을 합니다. 상위 게시 자료를 보기위해
지저분하 짓거리를 한다."이말입니다.

그게 무엇이냐면 하는것 하나 없으면서 오로지 자료만을 취하고자 몇일이 지난 자료에 감사 댓글을 시도때도 없이 단다는 겁니다.

하물며  일반 게시글에 내용이 무슨 내용인지도 확인 조차도 하지않고 똥인지.된장인지도 구분 못하고 감사한다는 댓글을 올립니다. 그게 사람입니까. 자료나 일반 글이나 그것을 올리는 사람들은 시간과 성의를 다해 올리는 것인데 그런 것들을 무시한체
포인트 쌓고 자료를 보려는 생각만 하는 쓰레기들을
대접할 용의는 다른 분들은 어떠실지 몰라도
제게는 없다는 겁니다.

제눈에 그저 구걸하고 다니는 인간 쓰레기들로 받게 보여지지
않습니다.

존중을 받고 싶으시다면 그럴만한 행동들을
하시면 되는 겁니다.

그게 뭐 그리 힘든 일이라고 않하시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자료를 제공해 주시는 분들이 1원짜리 동전 한닢이라도 받고
하는줄 아십니까..

여러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고자 각자 나름에 방식으로
시간들여 고생해가며 아무 조건 없이 무료로 제공 하는 겁니다.

님들이 그자료를 보시고 3등이상에 당첨이 되셨다고  감사하다고 소주 한잔이라도 대접하실 분들입니까..

그렇지도 않으실  분들이면서 감사한 마음도 표 할줄도 모르고
힘들게 올린 자료나 도둑질 해가고 그림자도 보이지도 않게
꼭꼭 숨어서 뭐 줏어 먹을게  없는지 썩은 동태눈만 말똥말똥
굴리고 있냐는 겁니다.

이야기가 또 삼천포로 빠졌네요
위 내용을 계획에도 없는 것이였는데
글을 정리하다가 보니 생각이 나서 추가 되었네요
좋은 마음으로 글을 쓴다고 했는데 .....글 내용중 표현이 거친 것은 그런 사람들에게 한 것이고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 한테는 계속
이러한 표현을 쓸겁니다.
이런 거친 표현으로 활동정지를 당한다 하더라도
정지 당하기 전 까지는 쭈~~욱  쓸것입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제가 왜 잘나지도 못 한 저의 살아온 인생까지
들추면서 이런 장문에 글을 올렸는지 모르실겁니다.

저도 왜 쓸때없이 이렇게까지 하며 이곳에 글을 올리는지를..
단지 성향이라  그 두글자 때문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나"라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고 알리고 싶어서 인지..
제 자신도 막상 글을 정리가 되어 가는 시점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뒈쳇 무엇을 알리고자......아님 무엇을 엊고자....
멋지게 살아온 인생의 이야기도 아닌 그저 한심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올리려 하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기왕 힘들게 작성을 한"것이니 두서없는 글 이지만
올리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글을 읽으시던..읽지 않으시던 상관 없이요

글 내용들이 전반적으로 싸움한 이야기라 보실수 있을 겁니다.
허나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싸움에 관한 것도 아니며...

그렇게 인생을 막"살아 오지는 않았습니다.
지킬것은 지키고 해야할 도리는 하고 살아왔고.
때론 내 자신 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변명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윗 글에 싸우게 된 연유도
내 자신에 잘못으로 해서 일어난 다툼은 아닙니다

결론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향이란 강해서 좋은게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겁니다.
때에 따라서 사소한 것은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것도 하나에
방법이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모든 일 들을 그러자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외 상황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는 것이니까

여튼 조금만 이해하고 양보하며. 내 자신에 성향만 앞세우지
않는 다면 모든 일을 쉽게 해결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사소하게 여겼던 일이 큰 불씨가 되어
것잡을수 없는 상항까지 된다고 봅니다.

암튼 저같은 미련한 성향으로 인생이 꼬이는 불찰이 없도록
조금식만 양보하고 이해하며 살자란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단 할 도리는 하면서요......
자신은 하지도 않으면서 남을 탓하지는 말는 겁니다
 탓을 하더라도....

무엇이 됐던 본인 부터가 해보고 나서 하라는 겁니다.
본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에 글과
자료를 가지고 이랬는지 저랬는니 하지 말라는 겁니다.

하지도 않으면서 탓 하지말고요
(이것은 성향에 대한 이야기와 별개로 하는 말입니다)

두서없는 내용에 글을 읽으셨을까?
긴 글을 읽어 주신 분들 고생하셨습니다
이상으로 신의한수에 상류장편 소설을 맞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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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5

댓글목록

두근두근1등하자님의 댓글

두근두근1등하자

장문의글  잘보았습니다.
신수님 사연이 아주 많으셨네요....
이제부터는 매일매일 행운이 신수님과 함께 했으면 합니다~
어머님도 신수님 건강 잘 챙기셔요~

신의한수님의 댓글

신의한수 댓글의 댓글

제 인생에 대해  알리는 글은 아닙니다 ㅎㅎ
성향에 관한 내용을 말씀드리고 싶었던 메시지였죠

여튼 긴 글 읽어 주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덕담과 응원에 말씀도 감사드립니다.(^-^)v